심리소설_Romans Psychologiques

[심리소설_연재] 성인아이 김공준 _ 11

인간심리분석 2022. 9. 22. 15:48

 

성인 아이 김공준 _ 11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장례식

 


공준을 어부로 만들기 위해 바로 그 곳으로 내려가지는 않았다. 그곳으로 가기 전 아직 아들 곁에는 아버지가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어떤 미련으로 도시에 남아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큰 배에서 내린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물가로 가서 배에 올라타기에는 뭔가 모를 아쉬움이 있었다.

그것은 자신만을 위해 살아온 날보다 아들을 위해 살아온 날들이 많았다는 것이 괜히 화가 난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들을 위해 살기로 한 그 약속을 지키려고 살아 왔지만 큰 배에서 내리는 순간 자신이 잊고 있었던 본능과 같은 쓰나미가 일었다. 마음의 허전함을 달래 볼 그 어떤 것이 필요했다. 왜? 아무리 자식을 위해 버티어 살아오지만 자신 만의 희생에 숭고한 보답이 없었다는 것이 영표를 잠시 나마 긴장의 끈을 놓게 했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시간을 누군가에게 몰입하며 긴장하며 살아왔다면 그 보상은 자신을 위해 돌아올 기대가 있게 마련이다. 그 기대란 공준이 자신을 위해 받기만 했던 일들을 갚아 주는 은혜로운 일이라는 기대일 것이다. 자신이 잊고 있었던 그 기대가 왠지 속상한 것은 왜 자신이 이렇게 늙어서까지 일을 찾아다니어야 하고 그 작은 수모를 느껴야 하는 지 감춰놓았던 울분이 또 일렁이기 시작한다.

인간은 구조적으로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자식을 양육하고 자식을 안전한 길에 들때까지 책임을 지는 것이 숙명인 것을 양육과 본능은 갈등하고 있다. 인간의 내면에서 숙명을 부인하려는 마음, 모성애와 달리 부성애는 어쩌면 간절하지 않으면 모성애보다 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나 혼자 만의 희생과 나이 60살은 피할 수 없었던 길이였기에 가능했었지 어떻게 자기 자식을 위해 40년 이상을 희생할 수 있을까? 그것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 때문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자식이 정상인이었다면 이렇게 많은 시간을 자식을 위해 나에 인생을 저당할 수 있을까? 아니다 나도 인간이면서 보통의 아버지이다.

보통의 아버지는 자식이 독립하면 자신만의 인생을 위해 살고 싶어 한다. 본능처럼 그렇게 인간사는 정해져 있다. 순리처럼 그렇게 연결된 고리는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자식과 점점 약해지는 관계를 받아들이기로 한 미필적 고의와 같은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그렇게 해서 자식과의 관계는 좀 서먹하고 그렇게 아버지는 다음 세대를 위해 죽고 그 자식은 자기 자식을 길러낸다.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그런데, 갑자기 드는 상실감은 뭐란 말인가?

영표는 공준의 아버지 역할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자식이 이렇게 된 것을 책임져 온 것만큼 한 편으로는 달아나고 싶었던 것일지 모른다. 그 도망은 공준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책임감을 회피하는 것과 같은 회피와 같은 것일지 모른다. 인간의 기능 속에 숨겨진 회로에 따라 결정하려면 같은 회피가 맞다. 그런 회피를 인정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이제 정할 것은 정하고, 나눌 것은 나누고, 분리할 것은 분리해야 한다고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갖게 되니 그렇게 된다.

영표는 홀가분하게 자식을 맡겨두고 홀로 산속에 갇혀있는 저수지로 낚시를 떠난다. 산 그림자가 가까이 있는 작은 저수지에는 알려지지 않아서 인지 인적이 없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긴장이 싫어졌고, 그 싫은 감정 때문에 조용한 곳에서 혼자 있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 고요함이 자신에게는 평온하고 안식임을 알게 되고 그런 뒤로 혼자 떠나는 낚시는 큰 즐거움이였다.

혼자 할 수 있다는 것, 모든 것에서 해방되었다는 것,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자신이 이제부터라도 누려야 할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잔잔한 물가에 찌를 던져 놓고 찌만 바라보는 지금은 행복은 그동안 사투했던 모든 것들과 휴전인 것이다. 

영표는 미친 듯이 살아보지는 못했다. 밀리고 밀려서 그냥 살아온 지난날들을 자식을 위해 살았다고 내 위안을 삼는 일은 자신이 한순간 이렇게 늙어버린 것에 대하여 받아들기 힘든 욕심도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자위할 수는 할 수는 없다. 핑계처럼 인정할 수도 없다. 무엇인가 하고 싶었던 일을 지금이라도 찾아야 한다는 것이 낚시줄에 매달린 찌처럼 가늘게 떨고 있다. 고기를 낚을 만큼에 실력도 없다. 그러나 하고 싶다. 
 
꺼지지 않는 욕망의 불씨는 언젠가 다시로 돌아오면 불씨는 점화된다. 그것이 인간인가 보다. 습관처럼 긴 한숨도 이젠 하고 싶지 않다. 발이 땅에 닿아 있는 것만으로도 뭐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부족하다.
그 시간의 부족을 느끼는 순간은 자신이 조급하다는 것이다. 조급하지 말아야지. 천천히 남은 시간을 즐기면서 살 수 있는 일을 만들어야 그것이 자신의 삶에 대한 보상이지. 그 보상을 얻기 위해 나만의 일을 생각해볼까.
여기까지 영표는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산 그림자가 깊어진다.
산 그림자와 같이 생각의 끈도 길어진다.
어둠에 대한 트라우마가 뱃일을 할 때 고착되어 어서 빨리 이 산속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것에 대해 손이 빨라진다. 드리웠던 낚시줄을 걷어 채비를 가방에 넣고 마을로 가는 길로 내려간다. 마을에서 저수지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감안하여 걸어 내려온다. 아직 마을에 닿기도 전에 시골의 어둠은 도시의 어둠보다 짙다. 걸어서 올라온 길이니 내려가는 길은 약간의 어둠이 깔려 있어도 충분히 찾아 내려갈 수가 있으리라고 생각을 하고 내려오는 데, 어디서 나타난 자동차가 영표를 들이 받았다. 영표는 하늘을 날아 고랑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영표를 치고 그 차는 달아났다. 뺑소니 차에 영표는 숨을 줄여가고 있었다.

어둠은 그렇게 증인도 없이 사고를 덮었다.
이튿날 농사짓는 사람에 의해 발견이 되고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어 뺑소니 친 운전자가 검거가 되고 경찰로부터 연락을 받은 공준은 감당해 낼 일이 아니였다.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아버지가 왜 죽었는지 따지지 못했다.

공준의 아버지 친구가 장례식장을 마련하고 사고 차량 운전자와 협상을 하는 데도 공준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빈 장례식장에 멍하니 영정 사진만 바라볼 뿐 어떤 슬픔도 느끼지 못했다. 메말라버린 감정이 슬픔이나 안타까운 심정들을 송두리째 걷어가 버린 걸까. 의식 없는 아들의 표정은 아무 느낌이 없다. 

배에서 내린 것이 얼마 되지 않아서 인지 상가엔 조문을 온 사람이 없다. 가해자도 피해자 유족과 협의가 되지 않아 상가에 조문조차 오지 않았다. 억울한 죽음이였다. 서러운 죽음이였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죽음이였다. 이제 자신 만을 위해 나래를 펴 보겠다고 생각만 가졌을 뿐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꿈을 접어야 하는 그 심정을 아들은 알까? 그렇게 처참한 인생은 제대로 살아보는 것도 용서가 안되는 것인가? 자식을 위해서만 살아야 하는 아버지의 운명인가? 피어보지도 못하는 꽃을 늘 품고 있던 아버지의 소망은 이루지도 못한 채 그냥 그렇게 간다는 것은 너무나 불공평하다. 그러나 세상은 불공평한 일들의 천국이다. 약자는 그렇게 죽는 것일까?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게 죽었다. 아무도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비통하다. 참으로 비통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식 하나 남겨 놓고 제 슬픔도 숨겨가며 자신은 죽었다.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장례식장에
단풍잎만 채곡채곡 떨어져 쌓여 있네
세상에 버림받고 사랑마저 물리친 몸 병들어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
나홀로 재생의 길 찾으며 외로이 살아가려 했으나
영표는 그렇게 의지할 곳 없는 이 땅에서 떠났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창작을 기반으로 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written by 랑계풍 김영수

 

 

무단전재 및 배포 금지 

이 게시물은 저작권 보호를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