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소설_Romans Psychologiques

[심리소설_연재] 성인아이 김공준 _ 9

인간심리분석 2022. 7. 26. 18:52

 

성인 아이 김공준 _ 9

 

남쪽나라 십자성

 


원양어선은 남쪽으로, 남쪽으로 한 달을 쉬지 않고 물을 갈랐다. 조업을 하지 않는 동안 배 안에 선원들과 친하게 지내며 가장 어린 공준이는 외국 선원들이 더 좋아했다. 그러나 공준은 남은 성격을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 그들도 돌아설 것이라는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공준의 아빠는 배안의 환경에 대해 공준에게 주의를 주었다. 혹시 외국인 선원들과 싸움이라도 있을 것 같아 더 이상 상처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늘 다독이며 붙어 다녔다. 그런 부자를 보고 선원들은 부럽다고 야단들이다. 그래도 이번 만큼은 자신이 공준이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정신을 갖은 아이이다. 상처받기 쉽고 그동안 많은 상처를 받아왔고 끊이지 않는 상처를 계속 받아가고 있다.

그 상처들이 어떤 난관을 만났을 때 견딜 수 있는 두꺼운 굳은살이 되어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으면 좋으련만 공준이의 상처는 쌓이는 상처가 아니다. 회피하고 돌아서고 다시는 돌아보지 않는 폐쇄형이다. 그러니 상처가 더 깊어지기 전에 상처받을 일들을 상처받지 않도록 주변관리를 잘 해주어야 한다.

정상의 성인으로 만들기 위해 사명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집착하고 있다.
혼자 놔둬서는 살아갈 수 없는 아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여기는 좁은 공간이다. 배안에 갇혀 고기를 잡고 휴식하고 고기를 잡는 일 말고는 하는 일이 없다. 오직 사는 길은 돈을 많이 모아 배에서 내리는 길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조국으로 갈 수 없다. 살인자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15년 이상은 조국으로 갈 수 없다. 어디에도 갈 수 없다. 요즘은 인터폴이 있어 형사사건은 지구 끝까지 쫒아가 잡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전한 배안에서 감방 생활을 한다고 생각하고 지내야 한다. 그것만이 살길이다. 그렇다고 자수할 수도 없다. 자수를 하게 되면 또 공준이는 홀로 남게 되고 혼자 남게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가 없는 것이다. 죽은 듯 숨어 지내는 수밖에는 없다. 그동안 공준이가 이 험한 바닷일을 하면서 버티어 낼 수 있을 까 걱정이 앞선다.  

바다는 모든 것을 포용한다.
육지의 편견과 고집과 아집은 공동작업이라는 명제 하에 협동과 단결, 끈끈한 동료애를 강요받고 조금도 틀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면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에 갑판장은 잘못된 행동을 바로 바로 지적한다. 갑판장은 각자 다른 문화권에서 살았던 동료들도 뭉치게 하는 힘을 발휘를 한다. 그것은 태풍이 불 때는 서로를 희생하고서라도 치러야 할 값진 희생을 요구하는 것을 배우게 한다. 개인의 생활보다 집단의 조직 생활은 공준이와 같은 심리적 약자에게는 숨겨진 내면을 굳이 밝힐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조직 생활을 해보지 못한 공준은 또한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을 가지고 있는 폭발물임에 틀림이 없다.

 

그것을 알고 있는 아버지는 늘 독려하고 다른 사람들과 친해지기를 권고한다. 

생활의 변화로 인하여 환경이 바뀐다고는 하지만 내재한 그 분노는 언제 터질지 모르니 답답하기만 하고 여기는 사고를 치고 도망할 곳도 없는 배안이다. 그런 불안을 갖는 것은 아버지뿐만 아니라 아들도 마찬가지이다. 참을 수 있는 일이라면 참을 수 있겠으나 참아서 될 일을 참지 못하여 폭발하는 것은 완성되지 못한 조각품과 같은 것이다. 깎고 또 깎고 형상이 나오면 다듬고 문질러서 작품이 되려면 시간은 인간을 언제 만들지 언제 완성품인 완전체를 세상에 내 놓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완성품은 수용을 거부하지 않는 완성품인 것이다.

불안할 때면 아버지는 갑판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며 노래를 부른다.
 
남쪽 나라 십자성은 어머님 얼굴
눈에 익은 너의 모습 꿈속에 보면
꽃이 피고 새가 우는 바닷가 저편에
고향산천 가는 길이
고향산천 가는 길이
절로 보이네

보르네오 깊은 밤에 우는 저 새는
이역 땅에 홀로 남은 외로운 몸을
알아서 우는 거냐 몰라서 우는 거냐
기다리는 가슴속엔
기다리는 가슴속엔
고동이 운다

날이 새면 만나겠지 돌아가는 배
지나간 날 피에 맺힌 꿈의 조각을
바다위에 뿌리면서 나는 가리라
물레방아 돌고도는
물레방아 돌고도는 
내고향으로

언제 돌아갈지, 기약 할 수 없는 날을 앞에 두고
망망대해 끝이 보이지 않는 해안선을 바라보며
바다 위에 피를 뿌리며 지나간 날 피에 맺힌 나의 꿈을 그리며
이역 땅에 홀로 남은 외로운 몸 고향을 그리워하는 신세가 되었구나

아들아 수용하라. 

공준이의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 안전기지가 되어줄 사람이 과감하게 그의 편을 들어주거나 몸을 던져서라도 지켜주려는 태도를 보이는 중요하다.

평온할 것만 같았던 태평양 바다가 구름을 빨아 당기니 금새 흑빛으로 변한다. 새벽까지 조업을 하느라 몸은 지쳐 겨우 잠이 들었는데 선장의 긴급 지시가 떨어진다.

모두 갑판으로 가서 움직이는 것들을 모두 묶으라는 지시였다. 이미 배는 용왕의 혓바닥에 얹혀 있었다. 파도를 따라 그 큰 배가 물속에 잠길 듯 파묻혔다가 겨우 살아 올라와 솟구치기를 여러 번, 갑판에 그물은 크레인 돛대에 감겨져 있어도  휘몰아치는 폭풍은 연실 그물을 풀어 헤쳤다가 감는다.

이리 저리로 끌려 다니며 마지막 점검을 마칠 때 큰 파도가 갑판을 삼켰다. 선원들은 아우성이지만 누가 누구를 지켜야 할지 몸은 부자유스럽다. 그 가운데 공준이와 공준의 아빠도 있었다.

감겼다가 풀리는 그물이 공준의 발을 낚아챘다. 중심을 잃고 그물과 공중에서 몇 번 돌더니 힘없이 내동댕이 쳐 갑판에 낙엽처럼 뒹굴었다. 폭풍 속에 인간은 종잇장 같았다. 그 광경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곁에 있던 공준의 아빠도 손 쓸 틈이 없었다.

흑빛 바다는 동료들을 긴장시키지만 아무도 그 광경을 본 사람은 없었다. 사고다. 공준이 아빠가 다급하게... 

‘준아 ! 준아! 준아!’

공준이는 갑판 구석에 내동댕이 쳐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격랑은 모든 상황을 감추고 도망가버렸다. 

그 다음 날 파도가 삼켜버린 것들을 토해내고 용왕님의 잔소리를 듣고서야 갑판구석에 축 늘어진 공준이를 덮고 있던 공준의 아빠를 동료들이 발견하고 아빠의 부상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밤새 폭풍우와 사투를 하였다. 둘은 다행히 일찍 발견이 되어 선실로 옮겨 치료를 받았다.

공준의 아빠가 깨어났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펴보니 공준이가 옆 침대에 누워 있었다. 벌떡 일어서려는 순간 고꾸라졌다. 발에 힘을 줄 수 가 없었다. 그래 어제 밤 폭풍과 사투를 벌일 때 의식을 잃은 것을 이제 생각을 해 내었다.

‘준이, 준이는 어떻게 된거야!’

‘얘 공준아! 공준아! 얘야.’

폭풍이 거셀 때 공준이가 그물이 발에 감겨 갑판에서 신음하고 있을 때 ‘준아! 준아!’하고 불렀던 것을 이제야 기억해 내었다. 의식이 남아 있을 때 공준이를 자신이 살렸다는 것을. 공준이를 감싸고 있지 않았으면 분명 공준이는 황천길에 있었을 것을 잘 안다. 공준의 아빠가 공준이에게로 가 얼굴을 부비며 눈시울을 적신다. 부족해도 내 아들, 겁이 많아도 내 아들, 그렇게 겁도 많고 불안감도 심한 아이가 큰 폭풍 앞에 숨지 않고 당당했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벅찬 일인가? 누군가의 등 뒤에서만 있을 것 같았던 아이, 누군가의 수혜로만 있을 것 같은 아이, 끝까지 제 손으로 자신도 지키지 못할 아이, 제 한 몸 지키지 못할 아이가 자신을 지켰다. 공준의 아빠는 세상에 오직 피붙이라고는 단 둘뿐인 지금에 아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가? 감격하여 흐르는 눈물을 주체를 할 수가 없었다. 다행이 공준이도 하늘의 도움으로 호전되어 건강을 되찾았다.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에서야 아빠가 자식을 지키는 힘이, 그런 용기가 나타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러면서 아들을 지켜본다. 그리고 처음으로 아들을 위해 기도하기 위해 눈을 감는다.

아들의 뒤에서 아들이 홀로서기를 바라며 뒷켠에서 바라본 날들이 주마등같이 흘러간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아이, 부족한 아이, 부족해도 내 아들.

아들아! 자책 하지 마라!
네가 너의 성격을 그렇게 만든 것도 아니고,
불완전한 환경과 불완전한 가족관계가 지금과 같이 절제와 자제를 제 스스로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간혹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기복이 파노라마처럼 흥분했다가 가라앉는 의도되지 않은 일들의 번잡함이 네가 만든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것은 부모가 그렇게 만든 것이고, 처음부터 그렇게 사용하라는 선천적인 기능을 타고 난 것뿐이지 네 탓은 아니지 않는가?

또 세월이 지나면서 모난 것이 닳고 닳아 환경에 적응하고 대처하려는 능력이 생긴다면 만들어진 기능들은 제 자리에서 제 일들을 할 것인데, 지금의 것들을 부정하지 마라.
아무것도 부정하지 마라.
아무것도 네 탓이 아니다.

불완전하니 좀 더 의존한 것뿐이고, 의존의 수혜가 편했을 뿐이고, 그 수혜는 안전했을 뿐이고, 안전했으니 안주하려 했을 뿐이다.

아들아! 너는 너대로 바른 길로 가려 하지만 바른 길로 가는 길에는 방해자가 있는 사회라는 것을 잊지 마라. 너에게 올바른 판단을 방해하는 조작된 사회가 너를 훼방할 수 있다.

네가 올바른 길로 가려고 할 때 그런 판단은 결국 선택된 기능들이 온전히 발휘될 때 나오는 결과물이다. 그렇게 되지 못함은 이미 오래 전 기록된 옛 기능들이 지금 이 현실에 적합한 기능을 찾지 못 해서 일어난 시행착오일 뿐 이다. 시행착오는 과정일 뿐이다.
 
아들아! 지금부터 그 과정을 찾아가는 실험을 해야 한다. 그것은 인간 누구나에게 모두 해당되는 일이고, 살아 숨쉬는 인간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똑같은 방식으로 학습하며 살게 되며, 그 방식을 찾는 일이 지금 이 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너는 조금도 부끄러울 것 없는, 떳떳하고 당당한 완성품이다. 너를 모르는 모든 사람들이 네가 미완성이라고 불러도 네가 느끼는 그 불완전은 오래가지 않는다. 수용하라. 지금의 불량한 저 눈빛들도 인정하라.
 
수용하고 수용하여 낮은 것부터 수용하는 법을 쌓아라!

아들아! 
분명 불완전은 완전을 목표로 진행하고 있다. 그 속도가 느리다는 것뿐, 그리고 천천히 오래 간다는 것뿐, 그 것을 다할 때까지 수용하라. 넓게 수용하라. 그리고 채우려는 노력을 하라, 그러면 완성되리라. 어느 순간 부족이 채워지리라. 온전한 완성이 이루어지리라.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창작을 기반으로 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written by 랑계풍 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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