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인 아이 김공준_ 1
시골에서 서울로
금요일 오후
늘어진 햇살은 툇마루의 끝자락에 매달려 있다.
나른해진 몸을 이리 굴려 벽에 기대고 저리 굴려 벽에 기대어 궁둥이가 배겨오는 것을 억지로 참는다. 이른 아침부터 오후까지 한자리에서 부업으로 옷소매 실밥 제거 손질을 하던 손이 점점 무거워진다. 옷가지들이 뭉쳐진 구석에 몸을 묻고 헐떡거리던 호흡을 가라앉힌다.
만삭인 배를 주체를 못해 오뉴월 더운 날씨에 숨을 고른다.
문밖에선 자동차에 확성기 소리가 동네 구석구석을 가래 끓는 소리로 감아 제낀다.
확성기 소리가 훑고 간 자리엔 3년째 확성기 소리와 싸우는 강아지 마루가 더 이상 대꾸하기 싫은 듯 크게 한번 짖어보고 만다.
일주일 만에 나타난 확성기 소리는 촌구석에 도시 음으로 찢어놓고 툇마루 끝에 간신히 매달려 있던 신발 한 짝을 바닥으로 떨어진다.
신발이 떨어지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선미가 폭신한 천 조각들 더미에 자리 잡더니 잠이 들어 버렸다.
남자아이가 골목에서 비를 맞으며 울고 서 있다. 그 골목은 눈에 익은 골목이다. 선미가 아이를 부른다. 빗 줄기가 굵어진다. 애가 탄다. 비 맞지 말고 안으로 들어오라고 계속 부르는데도 아이는 듣지 못하고 울고 서 있다.
“준아! 준아!”
선미는 놀라서 잠에서 깨었다.
산 달은 한 달 정도 남았는데 먹지 못하는 것에 비해 배는 남산만 하다. 첫 아이이기에 미리 사내아이의 이름으로 공준이라는 이름도 지어 놓았다.
꿈속에서 그 아이는 분명 사내아이였다. 한참을 얼마나 애타게 불렀던지 기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실제로 목이 컬컬한 것도 같다. 불길한 꿈이었다. 왜 그렇게 혼자 서 있었는지... 그리고 아무리 불러도 쳐다보지 않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출산 예정일이 가까워서 긴장한 탓일까? 애를 갖은 처음부터 날 때가 다 되어서도 입덧이 심했다. 입덧이 심해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어 영양이 걱정이 되는 때라 몹시 신경이 쓰인다. 선미는 잘 먹지 못해서 혹시 애가 유산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불안을 혼자 삭이고 있었다.
낮잠 중에 있었던 꿈이 가시지 않은 채 다시 옷가지를 집어 들었다. 손은 다시 바쁘게 움직인다. 습관처럼 자동으로 움직인다.
출근했던 영표가 돌아왔다. 퇴근 시간보다 이른 시간에 돌아온 것이 이상하다. 의아해하는 선미에 입을 막으려고 영표가 선수를 친다.
“죽일 놈들, 직장을 폐쇄하겠대... 글쎄.”
선미는 아직도 준이의 서 있는 모습을 지우지도 못했는데...
“그 소리가 뭔 소리야... 직장을 폐쇄한다니.”
“회사가 노조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문을 닫겠대.”
“뭐, 회사가 문을 닫아? 그럼 우린 어떻게 되는 거야?”
“어떻게 할 건지 동료들끼리 얘기해봤는데 끝까지 가겠다고 하네...”
1초에 망설임도 없이 내 뱉는 영표의 말에 선미는 이미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직감이 들었다.
그동안 석 달째 공장은 가동되지 않고 전에 없던 노동조합을 만든다고 회사 측과 대치하고 있었다.
“그럼 이 애는 어떻게 하고? 지금도 힘든데 더 어떻게 버티라고...”
벌써 선미는 체념을 넘어 포기하고 싶은 지 시선을 바닥에 떨어뜨린다.
이 상황을 어떻게든 정리할 필요를 느낀 영표는 결심한 듯.
“여보, 내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우리 여길 뜨자. 직장 하나 믿고 여기까지 왔는데...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저 싸움을 더는 기다릴 수가 없을 것 같아.”
그러면서도 선미의 얼굴을 살핀다.
“여기까지 온 것도 평탄한 것이 아니었는데 또 어떻게 하려고...”
선미는 화를 애써 감추며 마지막 질문 같은 말을 잇는다.
“여길 뜨면 어디로 갈려고... 어디 갈만한 데라도 있어? 계획이 있는 거냐고.”
영표는 마주 보이는 산을 바라본다. 물어본들 확실한 답이 있을 리 만무하다. 뭘 제대로 하는 게 없다는 것을 이미 선미는 알고 있기에, 여기서 안되면 다른 곳으로 피하고 또 피하고 그렇게 해왔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는 선미는 이제 뭘 한다고 해도 기대되거나 흥분되지 않았다. 이보다 더 나쁠 게 뻔한 데 이 막막함은 어떻게 번지를 찾지 못하고 허공에 떠 있다.
그래도 영표에게 희망을 주는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이렇게 된 환경이 영표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도 알지만, 더 나아지지 않는 농공단지 근로자의 생활을 마른 시멘트 바닥에 패대기치고 말만 들은 서울로 올라가자고 하고 싶은 것을 누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직장에서 만나 사내 커플이 된 케이스였다. 묘하게 두 사람은 홍성 출신들이 아닌 타지 사람들이다. 일터를 찾아 인근 시골에서 오게 되었고, 두 사람 모두 부모가 일찍 돌아가셔서 스스로 직업도 구해야 했고 생활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처지가 같았다. 그런 공통점이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분모로 발전하고 그런 필요가 서로를 당겼다.
영표는 아직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느라 직장이 끝나면 학원으로 달려가 공부를 했고 선미는 그런 사람이 멋있고 활력 있어 보였다. 언제서부터 인지 알 수는 없지만 마주치면 서로 인사를 하게 되었고, 인사를 하게 되니 관심을 갖게 되었다.
주변 친구로부터 영표의 성실함을 듣게 되고 괜찮은 사람이라는 평을 듣게 된 선미는 친해지는 속도를 가속했다. 서로 서먹했던 처음보다 저 남자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의무감이 몽글몽글 자라나기 시작한 것은 영표를 끌어당기게 하는 끈이 되었다.
그런 선미를 영표는 은근 즐기고 있었다. 자주 마주치던 곳에서 약속을 하고 서로를 찾게 되는 횟수가 잦아지니 만나면 즐거움과 기대가 있었다. 생활이 고되어도 위로해 줄 사람이 곁에 있다고 생각을 하니 행복의 햇살이 자신을 격려하는 것 같았다.
홍성의 직장이 ‘직장패쇄’라는 결단은 두 사람을 갈망의 도시 서울로 무작정 상경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친척하나 없는 황망한 도시에 어떻게 정착을 할 것인지 생각하지 않았다. 떠남으로써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만 있을 뿐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다. 그리고 둘은 서울과 경기의 경계선에 지하 방을 얻어 짐을 풀었다.
‘무엇인들 못하겠어!’ 영표는 속으로 다짐을 하지만 영표가 홍성에서 선미를 데리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할 때는 민주화 바람이 일어 전국적으로 노조를 만드는 회사들 때문에 온통 나라가 시끄럽고 야단법석이었다. 그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던 영표는 서울로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직장을 소개하거나 일거리를 소개할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땅, 그것도 처음으로 해보는 대도시 생활에서 어떤 난관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지 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손에 돈 한 푼 없는 가난한 시골 청년과 시골 처녀가 결혼식도 못하고 임신을 하게 되어 살아갈 일이 막막하다. 부모가 없으니 물려받은 재산이 없고 도시 근로자가 월급 조금 받아 월세 지출하고 학원비를 지출하니 남은 게 없는 이 현실. 그런데다가 돈을 버는 일보다 시험준비 한다고 도서관에만 가서 있으니 좀처럼 생활이 나아지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지금 그들은 갖은 게 없다. 지금에 처지를 누구에게 원망도 할 수 없는 것이고,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 막막한 현실 앞에 영표와 선미는 눈물만 흘릴 뿐이다. 부모가 될 준비가 없는 상태에서 임신이란 축복이기보다 걱정이 앞서는 중대한 기로에 있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애는 낳아야지, 애가 무슨 죄가 있어, 좀 힘들더라도 조금 힘을 내서 버텨보자. 그리고 오늘을 기억하자. 이 막막함을 절대 잊지 말자. 우리 준이가 복을 달고 나올거야. 복덩이가 나올거라구, 산 입에 거미줄 치기야 하겠어? 방법이 있을거야.”
독백처럼 선미에게 위로를 한다.
걱정으로 한숨과 눈물과 끝이 없는 나락과 사투하며 새운 밤이 몇 날이 되어도 직업은 구해지지 않았다. 그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선미는 약해져 갔고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영표는 더 괴로울 뿐 이였다. 이렇게 무너져서는 안될 것 같아 서로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곳으로 가서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느껴보자고 영표가 제안을 했다.
붐비는 사람들 속에 있으면 활력을 얻을 것 같았다. 아니 활력과 기운을 얻길 바랐다. 그들은 먼저 상경해서 자리를 잡은 서울 사람들이라는 것만 빼고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 자신들도 저렇게 활기찬 모습으로 마음 놓고 일요일을 즐기는 사람들이 될 것을 미리 경험하자는 것이다.
일요일 아침,
등산복 차림의 많은 인파가 산 입구에 모여 있었다.
높은 산에 오르려면 같이 오를 사람들과 단합을 해야 하는지 여기저기서 구호가 성호를 긋는다.
서로에 안전을 기원하고 등반에 성공하길 응원하며 기도하는 무리가 있는 인파 속으로 영표와 선미도 차림을 하고 섰다.
산을 오르는 사람마다의 함성이 산 속에 메아리로 돌아 올 때면 영표네도 산속을 향해 소리를 던져 넣었다.
“야호! 우리도 왔다.” 영표가 산속에 메아리에 답을 한다.
“선미와 준이도 왔다.” 선미가 고개를 들어 산속에서 돌아 나오는 메아리에 답을 한다.
“니들이 즐기는 만큼 우리도 즐기러 왔다...” 영표가 답을 한다.
“산아! 우리도 이젠 서울 사람으로 불러다오 산아~” 선미가 신고를 한다.
“우리도 잘 살 수 있다. 반드시 성공 할 거다.” 영표가 답을 한다.
그렇게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산 속에 깊게 박으며 한 시간 가량을 무리들 중에 있었다. 한 여름이라 계곡의 수영장을 찾는 가족들까지 있어 등산이 인지 피서인지 땡볕을 피하여 숲으로 숨어들기 바빴다.
땡볕보다 산을 오르면서 숨이 찬 땀샘들은 폭포처럼 살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땀에 숨에 열기에 배는 처지고 아롱아롱 피어나는 지열은 반사되어 무겁게 옮기는 발걸음을 더디게 하였다. 끈끈이처럼 찐득한 체액이 엉기어 목줄을 잡아 당겼다. 한 여름에 등산은 진액을 쏟아내는 불쾌함까지 지고 올라가야 했다.
그래도 둘은 혹시라도 땀에 손이 미끌릴까 손수건을 손에 감고 손을 잡았다. 손을 잡고 산에 오르니 제법 기분이 좋아졌다. 울먹한 지금의 환경을 잊어버릴 수 있었다. 계곡으로 빠지는 샛길로 사람들이 빠져나가더니 어느 덧 한적한 계곡이 나왔다. 두 사람은 조심조심 인적이 적은 곳으로 골라 계곡 옆에 길을 오르게 되었다.
그래도 일찍 출발한 사람들은 계곡 안에 물가를 점령하고 있었다. 좀 조용한 곳으로 조금만 더 올라가 보자는 영표의 말을 듣고 두 사람은 인적이 적은 곳으로 오르다 보니 중턱까지 오르게 되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계곡의 바윗 돌을 밟고 지나 갔는지 돌이 햇빛을 받아 반질 거렸다. 돌은 물기가 없는 데도 조금 미끄러웠으나 달리 다른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미 한창 내려 쬐는 여름 햇살에 숨을 곳을 찾는 것이 급선무라 생각했다.
얼마를 올랐을까 만삭에 임부가 오르기엔 좀 많이 올라 왔다고 생각이 들 만큼 인적과 햇살을 피해 선미가 오르는 산길에서 그만 미끌어지면서 바위에 아이의 머리 쯤 되는 곳을 바닥에 찧고 말았다.
“여보 괜찮아, 괜찮아!”
“어. 나는 괜찮은데... 넘어지면서 배를 보호하기는 해서 괜찮을거 같은 데 애가 좀 놀란 것 같아.”
“진짜 괜찮은 거냐고, 병원 가야지!”
영표는 진짜 겁을 먹고 보채듯이 반복해 물었다.
“아니, 아니야 잠시 쉬어보자! 애가 가만히 있는 데 좀 기다려보자.”
“아, 망할... 산에 오는 게 아닌데...”
이미 엎질러 진 물인데 영표는 자신을 타박하고 있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창작을 기반으로 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written by 랑계풍 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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