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제가 요동성을 공략하고 있을때
우중문, 우문술ㅇ이 읶는 육로군30만 5000명은 가기 다른 길로
출동하여 압록강 서쪽에 집결하였다.
당시에 우문술 등은 노하양원의 2진으로부터 군사들에게 모두 백일동안 먹을 식량을
나누어(식량을 나누어준 곳=노하=운남성-양자강사이) 주고 또 배갑창초, 의자융구, 화막등을 주었으므로,
사람마다 3석(240KG)의 중량이 되어 능히 이겨 낼 수 없었다
한사람 당 백일분의 식량을 준것이다.
왜 백일 분의 식량을 준 것일까?
임유관 전투당시에 보급품을 실은 수나라 水군이 고구려 군사에게 전멸당해 식량 보급을 받지 못하자
수 `양제는 아예 식량을 미리 군사에게 나누어서 만에 하나 해군으로 부터 식량을 보급받지 못하더라도
평양까지는 무사히 진격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수나라 군사들은 각각 3섬 이상의 짐을 지게되므로 그 무게를 감당 할 수 없었다.
"도중에 곡식을 버리는 자는 참수한다"는 우문술 장군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군졸들은 장막 밑에 몰래 구덩이를 파고 거기에 곡식을 조금씩 묻었다.
압록강 써쪽에 도달 할쯤에는 식량이 다 떨어지고 만다.
또다른 아유는
험준한 산성을 돌아 압록강까지 오기에는 보급을 수송할 장비가 없었다는 것을 참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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