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양제는 영양왕 23년(612년)2월 30만명의 어영군을 이끌고 요하 (랴오허강)에 이르렀다.
모든 군사를 모아 물가에 진을 베풀었으나 고구려의 군사가 요하를 막고 항전하므로 건너 올 수 가 없었다.
수 `양제는 공부상서 우문개에게 명하여 세 개의 부교 浮橋를 만들게 하였다.
그리하여 요하 서쪽 언덕에서 동쪽 언덕에 걸처보려고 하였으나 부교가 짧아서 언덕까지 닿지 못하였다.
수군의 선봉장수 는 100만 대군중에서 돌격대장으로 최고의 명성을 얻고 있었던 맥철장 麥鐵杖,
요하전투에서 맥철장이 읶는 돌격대는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3개의 부교가 다 짧아으니 수 `양제는 화가 치밀었다.
"그럼 짧은 대로 건너가서 강물에 뛰어들어 상륙하도록 하라"
고구려군은 지형의 이점과 단병접전을 마다하지 않는 용맹성으로 수군의 맥철장, 전사웅, 맹차 등을 전사시켰다.
수 `양제는 다시 만들 것을 명하여 이틀만에 다시 고쳐 만들었다.
치열한 접전을 벌였지만 일단 교두보를 확보하면 수나라군은 순식간에 병력이 불어 난다.
고구려군도 만명이사의 사상자를 내었다.
수양제의 지시사항
모든 군사 활동에 있어서 공격하거나 후퇴 할 때에는 반드시 나에게 보고하고 내 명려을 받아서
행하여야 할 것이다. 나의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만약에 고구려군이 항복하면 그ㄱ들을 무마하여 받아드리되,
만약 그렇지 않으면 도위병을 절대로 풀지마라.
고구려 군사는 기습작전을 하다가도 수나라 군사들이 몰려오면 성안으로 도망가 성문을 잠그고
하였는데 4개월이 지난 6월까지 끄덕하지 않았다.
요동서이 함락 되려고 할 때 성주에서 한 사람이 문득 항복을 청하였다.
수나라 장수들은 이미 수양제의 지시를 받고 있었으므로 감히 명령을 어기지 못했다.
이를 수 `양제가 임시로 쓰고 있는 왕궁(육합성)까지 가서 수양제에게 알리고 돌아오면 성중에
수비는 견고히 되고 또 다나와서 항전 하였다.
삼국사기에는 여러 차례 그랬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요동성은 함락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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