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실과 신라왕---해설5
진흥왕12년 (551)
거칠부(파진찬)대각찬 구진, 각찬 비대, 잡찬 탐지, 잡찬 비서, 파진찬 노부, 파진찬 서력부, 대아찬 비차부, 아찬 미진 등을 승진발령하였고 입종갈문과 지소부인사이에 만호공주가 태어난다.
지소태후전에서 미녀들을 궁중에 모아 두고 세종(19세)이 누구를 좋아하는지 엿 보았다 .
세종은 지소와 태종 이사부 사이에 사통아여 얻은 자식인데 세종이 17세인 미실을 마음에 들어 한다.
진흥왕궁에서 지소부인이 입을 열었다
몇일전 공경들의 미녀들을 택하여 궁중에 모아두고 누구에게 마음이 있는지 보았습니다.
세종이 미진부의 딸 미지실을 좋아하더이다. 두사람을 짝지어도 좋을지 진흥왕에게 묻는다
진흥(28세)
미진부의 딸 미실의 미색은 인정할만하지만 마지막 결정은 노신 태종공의 의사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소태후가 태종에게 묻는다
며느리를 얻는데 지아비에게 의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실은 영실공에 손입니다. 영실공은 나에게 잘못이 많았기에 꺼렸습니다
그리하여 좋아하지 않게되어 결정하기 어려운바 되어 묻는 것입니다.
태종 이사부
영실은 충신입니다. 유명을 소흘히 할 수 없습니다. 지나치게 나무라서는 안됩니다. 세종이 이미 좋아하였다면 또한 사도왕후를 위로할수 있으니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지소태후
지아비의 가르침이 없었더라면 나는 큰 잘못을 할 뻔 하였습니다.
미실을 궁에 들게 하고 세종과 여러 날을 같이 있게 하니 서로 좋아 한다.
또한 지소태후는 숙명궁주를 사랑하여 사도왕후를 페하려고 한다는 것과 숙명을 왕후로 삼을 것을 미실에게 논의 했다.
미실이 사도왕후(미실의 숙모)에게 이 계책을 누설한다.
사도왕후가 진흥 앞에서 원통함을 호소한다.
진흥이 사도왕후를 위로한다
지소태후전에서 미실을 불러들인다. 미실이 겁먹은 얼굴을 하고 들어 온다.
지소태후
내 너로하여 세종을 받들게 한것은 단지 옷을 주고 음식을 주는 것과 같다. 그런데 감히 사사로이 색사로 보여 전군에 마음을 어지럽혔으니 그 죄를 용서할 수 없다. 지금 바로 출궁하여 참회하고 근신하라 꾸짖는다.
미실의 어머니인 묘도부인이 옥진 궁주(미실의 외할머니)께 미실을 인사시킨다.
옥진이 미실을 살피더니
이아이는 절묘하여 중후함은 이 할미를 닮았고 환하게 밝음은 벽화를 닮았다.
빼어나게 아름다움은 오도를 닮아서 백화의 신묘를 뭉쳤고 세가지 아름다움의 정수를 모았다고 할 수 있다.
이 아이는 반드시 대원신통의 도를 이을 것이다.
너는 내곁에서 가무를 배울것이며 장차 너의 숙모의 잉첩이 되어야 한다.
옥진이 미실을 앞에 두고 방중술을 가르킨다 . 매일 밤 교태 부리는 법, 사랑하는 법, 시중하는 법, 음주 가례하는 법을 가르킨다
농이 짙은 방중술도 비기로 가르킨다. 애무하는 법, 성교하는 법, 자세 등을 가르킨다
미실이 색을 바침으로 모든 상대가 후일 미실을 잊지 못하도록 기법을 배운다는 의미 이다.
미진부역시 진골출신 임으로 전에 살았다.
궁에서 출궁당한 미실은 미진부 장군이 화랑도를 이끄는 중월주의 자리에 있으며 아직 벼슬하지 못한 낭도들과 화랑들이 미진부 장군의 집을 수시로 드나 들었다.
미진부의 집에 문노, 사다함, 이화랑, 설원랑 등의 화랑들이 찾아온다.
이때의 미실이 있었고 미생은 12살 비보랑은 13세였다.
미진부
원화제도를 폐지하고 화랑도를 창설하여 1세 위화랑 공을 2세는 본인이 3세는 모랑이 풍월주로 화랑도를 이끌었으나 모랑공이 중도에 죽음을 당하고 이화랑을 거쳐 사다함이 풍월주에 올랐다. 물론 지소태후의 총애를 입은 이화랑 공을 어찌 따를 수 있겠는가 문노공에게 무술을 배운 사다함 풍월주도 전장에 나가 휼륭하게 화랑을 빛낼것이요 아울러 미생도 낭도에 입문하였으니 잘배우고 익혀 장차 신라군의 선봉에 중추적인 사명을 다하길 바란다.
이때 출궁 당하여 미진부의 집에 있던 미실과 사다함이 첫 상봉을 한다.
그리고 둘은 가까워지고 이때의 사다함의 나이 17세였다.
사다함
미실낭자 그대의 아름다움은 벽화와 같소. 늘 당신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이 목숨을 당신께 바치리오.
미실
풍월주, 사다함 공께서 어찌 이몸을 사랑한다 하오리까.
신라의 밝은 미래가 풍월주에게 달려있습니다.
사다함
낭자의 고운 눈빛이 나를 잡는구려
전장에 나가도 그대를 잊지 못할 것이니 나를 기다리겠다고 말해주오.
두사람은 사랑에 빠졌고 미실은 사다함을 지아비로 맞이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부부가 되기를 결심한다.
한편 지소부인은 세종에게
미진부의 딸 미실은 품행이 바르지 못하여 출궁시켰으니 세종은 진종전군의 딸 융명을 아내로 맞을 준비를하라고 한다.
세종
어마마마의 뜻에 따르겠사오나 소저는 미실이 그립습니다.
지소태후
아드님 장차 이나라 왕실의 전군이 되실 분입니다.사사로히 여인의 정에 이끌리지 마시고 이 어미의 말대로 하세요
한편 신라군에게 참패한 이후에 계속되는 대가야국의 군졸들의 요동이 있었다.
도설지(대가야의 마지막 왕)
우리 가야인들은 신라가 될수 없고 신라인이 될 수 없다. 가야인의 역사가 이어질 것이다.
신라를 공략할 것이니 따르라 야인들을 이끌고 신라로 진격한다.
가야국에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보고를 받는다
진흥
금관가야를 정벌하고 이제 대가야를 정벌할 때가 온것같소.
이사부 장군은 출정하시오
이사부 진영에서 사다함이 선봉에 서게 해달라고 청을 한다.
이사부
부장의 기개와 용매은 가상하나 이 싸움에서 최대의 관건은 우리군의 피해를 최소화하여 남은 전력을 북부전선에 투입해야할 것이니 부장은 후방을 맡는다.
사다함이 기병 다섯을 데리고 몰래 출병한다.
전단문을 오르게 하여 성곽을 지키는 병사들을 차례로 쳐 백기를 꽂고 성이 함락되었다고 고함을 친다.
가야군이 깜작놀라 전열을 잃고 우왕좌왕 한다.
성밖의 이사부가 진격 명령을 내린다.
성이 함락되고 성을 접수한다.
대가야를 토벌한 이사부 장군에게 전답과 포로 이백명을 하사한다.
그러나 전답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고 포로는 풀어 양민으로 살도록 명한다.
지소태후전에 내자원 상궁이 세종이 상심하여 식사를 거부하여 와병하고 있다는고 고한다.
이에 지소태후는 아들이 생명이 중하니 미실을 들이게 한다.
그러나 미실은 입궁할수 없다고 입궁하지 않는다
이에 지소태후가 크게 노하여 입궁할것을 명한다
미실
내자원의 상궁은 들으시게
내비록 황궁의 도를 문란케하여 죄인이 되었으나 융명의 첩이 된것을 어찌 기쁘게 생각할 수 있겠는가
세종전군의 부름에 응할 수 없으니 전하시게
세종이 직접 태후를 설득한다.
세종
태후마마
소자 미실을 가까이 할 수 없으니 융명을 차비로 미실을 부인으로 하고 싶습니다.
이에 융명이 차비로 강등되자 불만으로 화를 삭이지 못해 스스로 궁을 나간다.
진흥은 토함공을 불러 동륜을 보필케 하고 동륜에게 무술을 지도하게 한다.
사다함이 전장에서 돌아와보니 미실이 세종전군의 부인이 되었다는 말에 깊이 상심한다
상심함에 절여 시를 쓴다
청조가를 지어 노래를 슬프게 혼자 부른다.
병이 들고 병이든지 7일만에 죽는다 "내죽어 신병이 되어 전군부부를 보호하리라"
이화랑
네동생이 아직 어린데 네가 만약 일어나지 못한다면 누구에게 그자리를 잇게할까?
사다함
미실의 남편 세종을 모랑공의 옛일을 의거하여 풍월주로 세운다면 좋지 안겠습니까?
이화랑이 태후에게 고하여 세종을 풍월주로 세움이 어떤지 물었다
지소는 세종이 아직 어리고 약한데 어찌 그일을 맡길수 있겠소 한다.
미실이 세종에게 풍월주를 권한다.
미실
종형이 나를 사모하다 죽었습니다.
그가 남긴 한마디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대장부가 아닙니다.
지소가 세종을 6세 풍월주로 임명한다.
보좌로 설원랑을 임명한다.
사다함이 꿈속으로 들어와 미실에게
사다함
내가 너와 더블어 부부가 되길 원했으니
너의 배를 빌어 아들을 낳아야 겠다
얼마뒤 하종이 출생한다.
사도왕후전에서 미실을 들게한후 가까이 오라하고 귀에 대고
사도왕후
내 아들이 휼륭하니 네가 태자와 서로 가까이 하여 아들을 둔다면 마땅히 너르 부인으로 삼을 것이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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