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강의

고~수 전쟁의 결론(2)

인간심리분석 2011. 9. 11. 11:28

고구려의 방어

평시에 성을 중심으로 성 주위 농경지에서 농사를 짓거나 목축을 하여 생활을 영위하였으며, 유사시에는 식량을 비축한 성안으로 집결하여 성을 방어하거나 공격하는

작전을 수행 전략 전술에 근거를 둔 개념,

요동지역의 수비군을 포함하여 30만 병력이 전투에 동원되었다.

 

개인 병사들은 수렵생활에서 다져진 체력, 사냥술을 토대로 높은 전기(戰技)를 보유하였고 훈련을 통하여 집단 전투 능력이 배양 되었으며, 각 성간에는 상호 협조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후방 중앙군은 각 성과 성들의 작전을 증원하는 임무를 수행, 성 방어는 일차적으로 성주의 책임, 성은 200여개가 있었고, 이중 100여개는 만주와 요동지역의 군사와 경제상 요충지였다.

 

공격해온 고구려의 전의를 이끈 장군이 누구였는지 알 수 없다.

사실이 전쟁에서 여러명의 영웅을 탄생시켰다. 요하전투에서 고구려군이 밀리자 후퇴를 거부하고 앞으로 달려 들었던 용사들도 있었을 것이고, 건무가 지휘한 평양성 전투나 을지문덕이 지휘한 살수 전투에서 선봉에 적진으로 돌진하여 산화한 영웅도 있을 것이다.

고구려의 전술도 다른 장수나 어떤 참모의 건의였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오직 을지문덕과 고건무많이 영웅이 된것은 이 전황을 전해주는 기사가 하나같이 중국측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들로서는 최고 지휘관급외는 이름을 알만한 장수가 없었던 것이다.

고구려의 선두부대를 지휘한 장군이 누구인지 알지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