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심리발달 연구, 엄마는 심리학자

인간내면의 지배자 <편향적 애착>

인간심리분석 2020. 6. 21. 01:05

인간의 본성에는 편향적 애착이 숨쉬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자기가 낳은 자식의 사랑이다.

자가 자식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편향적 애착이라고 본다.

 

인간은 누구나 편향적 애착을 갖고 있다 

애착을 소유하고 있는 것 뿐만 아나라 편향적 애착 부분에 강한  특성도 갖고 있다.

자기 자식의 사랑은 강한 특성을 가진 편향적 애착이다.

 

인간이 편향적 애착있을 때 삶의 만족도가 더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인간은 보편적으로 편향적 애착에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쾌감은 편향적 애착의 보상치고는 과분한 선물이다.

인간은 편향적 애착이 자신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글만 쓰고, 내가 좋아하는 낚시만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만 듣고, 내가 좋아하는 운동만 한다.

좋아하는 것을 하고, 하고 싶어하는 것만 하게 된다.

 

욕구는 편향적 애착을 돕는다.

자아실현은 편향적 애착의 고착화로 가는 길이다.

 

성공은 성취력의 편향적 애착이다.

성취력이 극대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편향적 애착의 힘이다.

실패는 극대화 과정에서 편향적 애착의 뒷 힘이 부족해서 실패하는 것이다.

 

음식에 대한 욕구를 흔히들 대상 이동 쾌락이라고 보는 데

대상 이동 쾌락은 편향적 애착의 뿌리인 질투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운동으로 느끼는 희열,

운동을 함으로서 집중하게 되고 몰입하게 된다.

집중의 힘, 몰입의 힘이 편향적 애착의 흐름(기제)으로 빠져들게 한다.

 

편향적 애착은 두뇌의 기억 장치에 있기에 축구 경기를 관람하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경기를 보면서

대상 이동 편향적 애착이 스스로를 도취하게 만든다.

 

학생들이 공부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삶의 목표를 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편향적 애착을 발견하지 못해서 이다.

편향적 애착을 발견하면 삶의 태도가 달라지고 진취성이 생겨난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전도를 받아 신앙을 시작하지만 종교단체들은 서로 같이

편향적 애착을 갖도록 집중적인 선동을 한다.(인간들이 하는 일)

편향적 애착의 단계로 들어서면 스스로 열성적인 신봉자가 되는 것는 것이다.

 

편향적 애착을 버리는 것이 무의식의 실천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즐기는 것,

내가  축적하는 것,

내 세계를 구축하는 것,

나만의 프로그램을 정하는 것,

 

세상의 모든 탐욕을 내려 놓는 것,

편향적 애착을 내려 놓는 것,

그것은 죽음을 앞에 두고서야 내려 놓는 것이다.

 

열반에 들고 영성에 들고 초월에 경지인 최고의 의식단계에는 무엇을 버려야하는 가?

편향적 애착을 버림으로서 도착하는 곳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내가 옳다고 믿는 신념이 정의라면 그 신념은 죽음 앞에서도 정의의 신념이 있는 것이다.

정의의 신념에 편향적 애착이 개입하면 자기주관은 선별적 정의로 변하는 것이다

선별적 정의란 자신만이 믿는 그릇된 오류 투성이인 감별을 부정하는 고집으로 변하는 것이다.

 

편향적 애착으로 예술을 바라보고 편향적 애착으로 감동을 끄집어내는

순환기적 예술 평가는 불완전한 예술도 인정한다.

 

인간은 왜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보게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들으려하는 가?

그것은 인간의 기제 중에 진화된 선호가 편향성을 유도하는 애착을 갖도록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편향적 애착으로 변환하려는 자기애가 스스로 만들어 지는 것이다.

심리적 에너지도 편향적일 때 더 생성된다.

그래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중독성으로 자기애를 지배하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위기를 극복하려는 극기심에도 편향적 애착이 있다는 것이다.

위기 속에서 상황을 정리하고 회복하려는 회복력이 편향적 애착을 가질때 스멀 스멀 다시 일어선다.

 

슬럼프에 빠졌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선 극복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무기력에 동기부여를 하는 것은 편향적 애착이 개입하여 동기를 자극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

슬프다, 살고 싶지 않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걸어가 식당 앞에 줄을 선다.

편향적 애착이 동기를 부여한다.

편향적 애착이 동기보다 앞선다.

편향적 애착이 욕구보다 앞선다. 

 

욕구 안에는 <내가 좋아하는 >의 명제가 꼭 붙어 다닌다.

1차적 욕구는 모두 편향적 애착을 갖는다.

 

편향적 애착은 이기심도 있다.

이타심보다 이기심이 더 강하다.

이성은 편향적 애착을 중용으로 포장한다.

균형적으로 이성을 포장한다.

편향적 애착이 이기심을 지배하는 것이 탐욕이다.

탐욕이 있으면 죄성이 생기고 죄성은 선보다는 악에 근본을 두고 있다.

 

개체가 선호적으로 진화한 다음부터는 기호를 누른 것이

편향적 애착으로 고착되어 기호는 편향적 애착과 

평행선을 달린다.

 

본성에는 악의 근본이 있다.

선은 악의 본성을 숨기려는 노력을 한다.

선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는 것은 도덕성을 학습 받아서 이다.

악이 편향적 애착으로 부터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

 

편향적 애착의 기제는 어떻게 생기게 되는 것일까?

진화심리학으로 들어가 보자.

남성은 서열구조에 선호되어 사회에 적응하는 시스템에 합류하게 되었다.

서열은 스스로의 생존과 본능과 협업과 연결되었다.

 

유아기의  애착은 생존의 본능이다.

유아기적  애착은  환경에 적응하려는 인간의 선호적 본능이다.

보호와 안전과 혜택과 수혜를 받으려는 선천적 신호이다.

 이 신호를 받아주려하지 않으면 생존에 실패하는 것이다.

그렇게 이 시그널은 익숙함으로 자신이 선택하는 편향적 애착으로

선회하여 양육자의 기분을 살피는 편향적 애착으로 고착되는 것이다.

 

다행히 양육자가 애착을 잘 받아주는 편이면

애써 편향적으로 바뀌지 않아도 되는 애착을 갖고 성장하는 성인이 되지만

유아기의 애착을 받아주지 않거나 모른척하거나

진짜 모른다면 그 시그널은 편향적으로 변하여 성장하는 것이다.

 

편향적 애착이 확장되는 계기를 만드는것은

양육자의 환경과 양육자의 태도이다.

 

편향적 애착은 부정성을 갖을 수 있다.

편향적 애착은 선호의 반응을 잘 못해석하는 오류로 발전될 수도 있다.

편향적 애착은 아이의 심리를 밀어보고 당겨보는 마음의 창을 밀당한다.

편향적 애착으로 아이들의 세상보기는 잘 못된 것을 모르는 인식의 틀을 갖게 된다.

 

인간의 본성에는 편향적으로 언제든 바뀔 수 있는 편향적 애착이 있다.